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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시간

직장을 다니는 이유_제멜워싱

도노. 2018. 1. 31. 23:53








내가 직장을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아실현을 위해서?

좋은 직장에 대한 부러움의 시선을 느끼기 위해서?

부모님께 자랑스런 아들이 되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곰곰이,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내가 이 일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말이다.



첫 째, 나는 자아실현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의 자아는 점점 작아졌으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둘 째, 사람들은 나를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셋 째, 부모님께서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넷 째, 언제부턴가 월급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절실히 말이다.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 이유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그것만을 위해서) 온갖 스트레스를 견디며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내겐 상당한 충격이었다. 나의 뇌에게 속은 기분이랄까.



세일즈맨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비즈니스맨을 꿈꿨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했던 나는, 어떤 능력을 키우면 좋을까 고민하던 끝에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영업을 시작했다. 어떤 사업이든 영업력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능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직접 현장경험을 쌓으며 정말 많이 배웠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성장을 했는데, 그 기술이란 것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기분좋게하여 내게 친밀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나는 배운대로 행했으며 사람들은 점점 나를 좋아했다. 뿌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함을 느꼈다. 

삶은 계란 5개를 물도 없이 꾸역꾸역 먹은 것 마냥 속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배를 쓸어내리며 억지로 소화를 시켰다. 정말 억지로.



나는 내가 판매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라면 그걸 이용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가치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며 상대성을 갖기 때문에 내게 가치 없는 그것이 그들에게는 가치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가치 있다고 받아들인 그들에게 실제는 그와 다르다는 것임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가 동반되어야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즉, 내 목표와 고객의 실제가치가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나는 정말 부끄럽지만, 가치의 상대성을 들먹이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짓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돈이 많았다면(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생활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정도의 자금이 있었다면)계속 다니면서 공부(세일즈 현장경험)를 했을텐데 나는 돈이 없었다. 돈을 벌려면 지속적인 판매가 이루어져야하는데 나는 더이상 판매를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찰나에 나를 많이 도와주시는 멘토와 같은 분께서 새로운 제안을 해주셨다. 그분께서는 내 고충을 듣고서, "상품은 내가 팔테니, 너는 내가 상품을 잘 팔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버틸 수 있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은 마음이 편했다. 더이상 내가 싫어하는 일(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상품을 직접적으로 판매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업무의 비중 또한 커졌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겠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그분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권한과 의사결정은 매출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마찰이 생겼던 것이다.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계속해서 월급을 받으려면 그분의 의사결정을 따라야 했으며 그것은 곧 그토록 싫어하던 그짓을 또다시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저 그분이 하는 일을 '돕고' 있는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버텨왔는데 이제는 그 한계점이 온 것이었다.




내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돌아오는 답변들은 이러했다.



"세상에 안힘든 사람이 어딨어."


"회사생활이 다 그런거잖아."


"배부른소리 한다."




비관습에 대한 관습의 반응은 싸늘하다. 

세상에 안힘든 사람 없고 회사생활이란 다 그런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 직장에 남아있는다. 그게 관습이니까.


본인이 만족스럽게 일을 하고 있다면 아주 베스트고 부럽기까지하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으며 관습을 따르는 대가로 내 소중한 인생을 그런식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관습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경험을 누리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순간들이 내게 그것을 갈망하게 했다.



-스키장에서 하루종일 줄만서있다가 딸랑 두 번 타고 내려오는 데이트를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이유로 일요일 점심부터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상품과 서비스를 권하고 싶지 않다. 


-내키지도 않는 상사의 생각(의사결정)에 동의하는 척하며 일하고 싶지 않다.






엠제이 드마코(미국의 투자자이자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는 본인의 저서 '부의 추월차선(UNSCRIPTED)'에서 '제멜워싱(비관습이 관습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마찰)'에 대해 소개한다. 잠시 책에서 발췌한 아래 내용을 읽어보도록 하자.




'1847년에 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 독일계 헝가리 의사로 무균수술의 초기 개척자)는 의학에 있어서 전설적인 발견을 했다. 그는 의사들이 클로르 석회수로 손을 씻으면 그 당시 흔한 질병이었던 산욕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비관습적인 제안을 했다. 그의 동료 의사들이 그를 인정해주고 찬사를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쉽게도 아니다. 제멜바이스의 발견은 관습적 의학 지식과 상충했다. 그 당시 주류 의학계는 그의 주장을 강력하게 반박하면서 터무니없는 소리로 치부했다. 어떤 이들은 당시의 과학적 추론에 기초하여 그의 발견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무시했고, 또 어떤 이들은 상류 사회의 신사인 의사의 손이 더러울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부도덕하다며 그의 발견을 일축했다.


동료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제멜바이스는 오랜 세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종국에는 의료계의 합의에 반대하는 그를 동료들은 돌팔이라는 오명을 씌우며 의료계에서 추방했다. 1865년 제멜바이스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졌고 거기서 삶을 마감했다.


수십 년 뒤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세균 이론에 있어서 커다란 의학적 진보를 이룩함으로써 제멜바이스의 명예는 복원되었고 그의 가설이 인정을 받게 되었다. 관습에 대한 도전을 한 제멜바이스의 저항은 그를 따돌림과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시간은 그를 전설적 인물로 우뚝 세워주었다. 많은 전설적 인물들이 그렇듯이, 그의 이름은 어느 대학교의 이름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각본에서 탈출한 길에서 당신이 만나게 될 편향을 보여준다. 제멜워싱(Semmelwashing 비관습이 관습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마찰)이 그것이다. 전통적인 패러다임들을 반대하거나 의문시하는 메시지는 공격받는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도 공격을 피할 수 없다. 


관습을 거스르고 사람 발길이 드문 길로 가려고 할 때라면 언제나 관습을 요구하며 당신의 등짝을 후려치는 보통 사람들이 있을 것임을 명심하는 것이 좋다.'



출처: 부의 추월차선 완결판-언스크립티드)





언제부턴가 내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관습을 따라가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나는 내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으로 인한 싸늘한 반응이 두렵다. 너무 두렵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나는 멈춰섰다. 유심히 나를 관찰했다. 그것은 마치 거울 없는 쇠창살에 갇혀있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들 알겠는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지금 평온하다.

이 마음의 풍요로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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